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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6

4화 당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드립니다.

그날의 아이비가 내리던 날이었다.서점 문이 조용히 열리고,젖은 운동화를 신은 작은 아이가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서가 앞에 조용히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꺼냈다.거기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저는, 엄마가 저를 사랑했던 그날을… 다시 살고 싶어요.” 나는 말없이 그 아이를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날이 얼마나 특별했는지,혹은 얼마나 아팠는지는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명 교환권이 손끝을 스치고,눈을 뜨자 나는 작은 몸을 하고 있었다.낮은 시선, 무거운 책가방, 그리고 작고 떨리는 심장.문을 열고 들어서자주방에 있는 여자가 돌아봤다.그녀는, 아이의 엄마였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반찬했어.”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말없이 밥을 먹었다.아..

카테고리 없음 2025.04.12

3화 당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드립니다.

이별을 피하고 싶은 여자서점에는 유난히 햇살이 따사롭던 오후였다.조용히 문을 연 여자는 말없이 서가를 둘러보다가손끝으로 조심스레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별이 예정된 여행이에요.전 그 마지막 날을 견딜 자신이 없어요.대신, 다녀와 주시겠어요?” 그녀의 눈가엔 아직 말하지 못한 안녕이 맺혀 있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명 교환권에 손을 얹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다 근처 작은 민박에 서 있었다.그녀의 몸으로, 그녀의 시선으로.그리고 앞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그 웃음 안에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었다.마치 오래 전부터 연습해 온 대사처럼.우리는 함께 걷고, 바다를 보고,저녁엔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했다.그는 말했다.“오늘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

카테고리 없음 2025.04.12

2화 당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드립니다

사라진 아들의 기억을 찾아서비 오는 오후,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온 건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었다.우산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조용한 서점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여기, 운명을 대신 살아주는 곳 맞나요?”그의 손에는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사진 속 소년은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제 아들입니다.정확히 27년 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에요.”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노인은 조심스럽게 운명 교환권을 내밀었다.“그날을 다시 살고 싶습니다.하지만 제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당신이 대신, 그 아이의 마지막 하루를 살아줄 수 있을까요?” 카드에 손을 얹은 순간,눈앞이 흐릿해지고나는 좁은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거칠게 숨을 쉬며 누군가의 시선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었다.이건… 아들의 시선..

카테고리 없음 2025.04.11

1화 당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드립니다

서점 구석, 오래된 서가 아래서 낡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진한 자주색 밀랍으로 봉인된 그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당신의 운명을 대신 살아드립니다. 단, 대가가 필요합니다."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했다.하지만 봉투 안엔 운명 교환권이라 적힌 카드를 포함해 짧은 설명서가 동봉돼 있었다.“이 카드를 소지한 자는, 다른 이의 운명을 대신 살아줄 수 있습니다.대신 하나의 기억을 잃게 됩니다.”나는 그저 웃어 넘겼다. 그런 게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까.그런데, 그날 밤.익명의 발신자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제 운명을 대신 살아주세요. 하루만.”그리고 익숙한 이름 하나가 덧붙여져 있었다.서하.내가 단 한 번도 잊지 못한 사람.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고,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꿈을 쫓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마지막..

카테고리 없음 2025.04.11

비 오는 날, 404호에서

나는 오피스텔 404호에 살고 있다.이사 온 지는 두 달 정도 됐다. 보증금이 싸고, 위치도 괜찮았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비 오는 날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었다.첫날부터 그 소리를 들었다.비가 내리던 밤,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쿵… 쿵… 쿵…"무거운 뭔가를 끄는 듯한 소리. 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무시했다.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꼭 그 소리가 들렸다.벽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리인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403호는 공실이라고 했다. 관리인은 애매하게 웃으며 말했다."비 올 때마다 그런 소리가 들린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냥 배관 소리일 거예요."그 말을 믿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카테고리 없음 2025.03.10

어느 날, 내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날 아침, 나는 내 그림자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햇빛이 밝게 내리쬐는데도 내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나는 우연히 고개를 숙였고,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림자가… 사라졌다.나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주변 사람들의 그림자는 뚜렷하게 보였다. 한 손으로 태양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지만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뭐지…?"혹시 눈이 이상해진 걸까? 내 시야는 멀쩡했다. 손을 흔들어 보아도, 빛을 가로막아 보아도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출근길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와 내 얼굴을 비췄지만, 내 몸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았다.이상한 예감이 들었다.회사에 도착..

카테고리 없음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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